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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탐구가. 독서

여행의 이유, 김영하

by 로 건 2020.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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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제주도가 시작이었던것 같다. 
공교롭게도 매년 휴가시즌에는 사랑하는 연인이 없었고, 늘 혼자 떠났다.

가족이랑 왜 같이 안갔냐고 누가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의도적으로 혼자가 되고싶은 마음이 컸다. 조용히 있고 싶었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한, 혼자의 여행은 대만, 마카오, 홍콩, 오키나와 등 아시아권 나라들로 이어지고 있다. 큰틀에서 요일별로 어디갈지 계획을 세우고, 구글맵을 보며 목적지를 찾아다녔다. 초조함 속에서 목적지에 다 다랐을때의 그 안도감이 좋았다.

태풍 때문에 마카오로 돌아가는 배가 끊겨 홍콩에서 덜덜 떨며 급히 호텔을 찾던 순간이 있었다. 나이는 서른 둘이었지만, 낯선 곳에서는 어른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기억.

나는 매년 혼자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는가.
일차적으로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관광지든 주거지든 현지인들은 생계를 위해 물건을 팔고, 음식을 팔고, 흥정을 한다. 어느나라든 돈을 번다는 것은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건가 싶었다.

또, 다른 내 모습을 본다. 오키나와 푸른동굴에서 외국인 가족과 스노클링을 했던 기억, 대만에서 모르는 사람과 풍등을 날리던 순간 등 떠나지 않으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순간들에서 낯선 나를 느끼고, 더 풍요로워 진다. 


마지막으로, 늘 가방 안에는 책이 있었다. 혼자 며칠을 지내면 어떤 순간에는 지치기 마련이고, 외로움과 고독이 찾아왔다. 그 순간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책을 꺼냈다. 외로웠지만 내 머릿속을 새로운 세계로 채워 나갔다. 수많은 낯선 사람들 속에서 책과 나만 온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여행은 매년 계속 될 것 같다.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기 위해서.

 

 

 

인상깊은 내용 발췌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그가 베푼 것도 일종의 환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의 가족을 만났고, 그가 믿는 신과 그 신이 사는 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를 온전히 믿어야만 했다. 나의 신뢰는 그의 환대로 돌아왔다.

그렇게 적응을 위해 노력하다가 다시 어딘가로 떠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디에 있더라도 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흔들림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찾아오는 낯선 단단함.

아마도 그는 다시 떠났을 것이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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